식량도시: 서울에서 먹고, 마시고, 숨 쉬기

이 혜 원 (대진대학교)

서울에는 7천 명의 전업농부가 있고, 일 년에 630톤의 곡물, 175톤의 감자, 1,160톤의 오이, 411톤의 토마토, 311톤의 배가 생산된다. 1)  노년층을 중심으로 한 게릴라 농부들의 활동 또한 활발하기 때문에 아파트 단지의 잘 정비된 조경수들 사이에서 깻잎과 호박이 자라고, 주택가의 담장 아래 늘어선 화분에서 상추와 고추가 자라는 모습은 서울의 흔한 풍경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도시농업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과 지자체의 지원이 확대되면서 도시 텃밭 면적이 지난 5년 동안만도 5.6배가 증가했다. 그러나 이들 전업농부, 게릴라농부, 취미 농부들이 생산하는 식량은 천만 명이 넘는 서울 인구를 부양하는데 필요한 양의 0.001 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서울이 식량의 생산지가 아니라 소비지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1년에 367만 톤이나 되는 식량이 유입, 유통, 소비되고 이중의 1/3이 버려진다는 사실을 별로 놀라워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왜 지금 서울에서 새삼스럽게 식량과 농업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 동안 지구촌 전역에서 발생한 식량과 관련된 각종 재난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막연한 낙관론이 재고되어야함을 말해 준다. 2006년을 전후하여 꿀벌의 집단폐사가 미국, 유럽, 아시아 등지로 확산되면서 인류의 식량생산에 적신호가 켜진 가운데, 2007년에서 2010년까지 세계 주요 밀 생산국인 우크라이나, 러시아, 중국의 밀농사가 연이어 실패하면서 세계 최대 밀 수입국인 이집트가 예상치 못했던 사회적인 혼란을 겪었다. 같은 기간, 중동 최대의 곡창지대인 '비옥한 초승달'을 강타한 사상 초유의 가뭄은 농촌인구의 급격한 도시 유입을 초래하면서 중동 국가들의 정치적인 혼란을 가중시켰다. 뿐만 아니라 조류독감의 확산으로 가금류의 생산이 급격히 줄어드는 가운데 2016년에는 한국에서만도 2천7백만 마리의 조류가 살처분되었고, 계란 값이 폭등했다.

1) 국가통계포털 2016년 통계, http://kosis.kr

이러한 상황에서 소위 '물의 남작들'로 지칭되는 다국적 투자은행들은 식량생산을 위한 절대적인 공유재인 물을 확보하기 위해 지구촌 곳곳의 주요 대수층을 안고 있는 땅을 사들이고, 남미, 아시아, 유럽 일부 나라의 경제 위기 혹은 부패한 정부와 낮은 시민의식을 틈타 수돗물의 운영권을 확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화학비료와 농약을 제조하던 기업들, 다시 말해 물과 토의 재생능력을 소진하며 진행된 녹색혁명의 버팀목이었던 기업들이 속속 식량생산의 근간인 종자분야로 진출하며 합병을 통해 몸을 불리고 있다. 그리고 2013년에는 유엔식량농업기구가 2030년 경 인류는 감당하기 힘든 식량난을 겪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며, 곤충을 미래의 식량자원으로 지목하기에 이른다.

아울러 더 이상 부정하기 힘든 기후변화의 파장과 날이 갈수록 예측하기 힘든 국제사회의 정치적인 기류 또한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 힘들게 만든다. 2017년 서울도시건축 비엔날레 현장 프로젝트  <식량도시: 서울에서 먹고, 마시고, 숨쉬기>는 이러한 위기의식에서 출발했고, 식량과 연관된 현안들을 통해 서울의 미래를 전망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서울로 유입되어 유통되고 소비되는 식량의 흐름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를 상상하며, 서울의 식량미래와 그 근간이 되는 기본적인 공유재인 물, 땅, 공기, 에너지의 문제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이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일차적인 목표는 서울에서 식량이 생산, 유통, 소비, 소모, 재활용 되는 과정에 대한 관객의 직접적인 경험이며, 텃밭, 양봉, 빗물저장고, 수경재배, 씨앗도서관으로 구성되는 생산 시스템, 도시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식품유통공간인 마트, 소비 공간인 식당과 카페, 그리고 여기서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가 버려지거나 퇴비가 되어 텃밭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하나의 압축된 시스템으로 제시된다. 이 시스템은 서울의 농부들은 물론 국내의 도농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작동된다. 서로 다른 지형적인 조건에 맞는 다양한 농법을 실천하는 현직 농부들의 지식과 경험을 빌어 돈의문 박물관 마을에서 채소와 허브와 유실수를 키우고, 이를 통해 생산된 것들을 식당과 카페에 공급한다.

<식량도시>를 방문하는 관객은 식사를 하거나 음료를 마시면서 식당과 카페는 물론 <식량도시>의 비전을 구현하는 또 다른 프로젝트인 물의 사유화, 미세먼지, 식량미래에 초점을 맞춘 세 개의 전시를 통해 먹고, 마시고, 숨쉬기와 연관된 각종 현안들을 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도시와 국가적인 경계를 넘어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글로벌 식량시스템의 각 요소에 내재된 문제의 시급성을 공감하고, 대처 방안을 찾는데 동참하도록 초대받는다.

나아가 이 프로젝트는 식량, 물, 공기, 땅, 에너지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지식과 대안과 실천모델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정보 공유의 장을 구축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지구촌 곳곳의 다양한 개인, 단체, 기관들과 연대하였다. 지난 16년 동안 내몽고 쿠부치사막에서 1천만 그루에 가까운 나무를 심으며 중국의 사막화와 싸워온 한국의 NGO 미래숲을 비롯해서 엄청난 규모로 바다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건져올리는 활동을 펼쳐온 네덜란드 청년 보얀 슬렛과 그가 설립한 단체인 The Ocean Cleanup, 그리고 비닐봉지의 사용을 법으로 금지하고 이를 10년에 걸쳐 정착시킴으로써 일회용 플라스틱 줄이기 운동이 국제적으로 확산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르완다 환경청의 활동이 대표적인 예이다.​ 뿐만 아니라 멀지 않은 미래에 서울이 겪게 될지도 모르는 물 부족과 극심한 기후변화의 파장을 이미 겪고 있는 인도, 중동, 아프리카, 지중해연안 지역의 농부, 과학자, 발명가, 활동가, 행정가, 시민단체 등이 시도하고 있는 대안적인 사례들도 <식량도시>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타밀나두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도의 전통적인 저수시스템 에리(Eri)를 복원하는 운동, 이집트 사막연구소에서 하고 있는 천적 곤충을 이용한 해충방제 연구, 키프로스의 비무장지대에 인접해있는 앗사스 유기농장의 니콜라 네티엔이 시도하고 있는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건식유기농법, 발명가이자 시민운동가인 사바스 하직세노폰도스가 요리를 하는데 드는 나무와 화석연료를 줄이기 위해 개발한 태양광 오븐 등이 소개된다.

아울러 각자 자신이 사는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장 전문가들, 즉 토양의 유기질 증가로 무농약 농업을 실천하며 씨앗을 보존하는 농부, 날이 갈수록 벌들에게는 불리해지는 기후 조건과 싸우며 꽃을 따라다니는 이동양봉가, 식량자원의 토대가 되는 식물을 연구하는 식물학자, 폭우가 내리는 날은 홍수가 날까봐 걱정하느라 잠을 잘 수 없다는 수자원 행정가, 깨끗한 물을 마실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활동가, 재난 시 물과 식량과 공기를 확보하는 방법을 찾는데 골몰하는 준비족,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에게 깨끗한 물과 건강한 음식을 먹이기 위해 엄청난 양의 정보를 찾아내는 젋은 엄마 등이 축적해온 지식을 공유한다. 이들이 제공한 정보와 지식, 대안과 실천모델이 물, 땅, 공기, 에너지 그리고 이 네 가지 공유재가 적절히 상호작용을 할 때 발생하는 결과물인 식량을 둘러싼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기반이 되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기획자가 지난 몇 년 동안 물에 관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이를 <식량도시>로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경험한 소감 몇 마디를 첨언하고자 한다. 사실 이 과정은 인류가 역사의 어느 한 모퉁이에서라도 식량과 물과 땅과 에너지를 공정하게 공유한 적이 있었는지에 대한 의심과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교육받으며 소비를 통해 자신을 규정하는 것에 익숙해진 개인이 '지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그 어느 때보다 컸던 시간이다. 그러나 국내외의 다양한 현장 전문가들을 찾아다니고, 보잘것없는 규모지만 서울의 도심에서 채소를 키우며, 불필요한 소비를 자제하려고 애써본 경험이 완전히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식량도시>를 향한 이 개인적인 여정을 통해 도시의 삶은 농촌이 없이 존립 불가능하며, 농촌의 삶 또한 도시의 변화에 좌우된다는 점, 다시 말해 도시와 농촌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운명을 공유하며 예측하기 힘든 미래를 함께 준비해야하는 동반자라는 사실을 보다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서울을 포함한 지구촌의 많은 도시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도시농업이라는 산발적이지만 뚜렷한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초보 농부들이 인류의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도시농업이 도시의 생태계를 회복하고, 공동체의식을 강화시키며, 도시에서 소비하는 식량의 일부를 생산하는데 작게라도 기여한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향후 예상되는 기후변화와 환경적인 위협에 대비하고, 생물다양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천하며, 건강한 씨앗을 보존하는 농업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농업관련 연구소에서나 가능한 농생물학적인 실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보다 더 덥거나 추운 기후 조건, 혹은 물이 더 부족하거나 공기가 더 오염된 상황에서 농사를 짓는 실험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농업은 농사가 생계인 전업농부보다는 도시의 취미농부들에게 더 적절한 선택일 것이며, 그 기반이 되는 물리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 또한 도시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조건을 약간만 변화시키는 것으로 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이 같은 실천은 여전히 건축가와 도시계획가의 도움을 필요로 할 것이다. 무한히 팽창할 것 같았던 성장이 둔화되면서 슬럼화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서울에서 용도가 폐기되는 건물을 굳이 되살리기 보다는 차라리 무너뜨림으로써 농지면적과 투수면적을 확장하는 것이 향후 예상되는 식량과 물 문제에 대비하기 위한  더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미래의 건축가는 짓는 사람이기 보다는 부수는 사람, 혹은 먹고, 마시고, 숨 쉬기가 덜 힘든 도시를 만들기 위해 체계적으로 자연을 다시 회복하는 사람이어야 하는 지도 모른다.